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견뎌온
경상북도의 뿌리 깊은 기업들을 소개합니다.

식품

제일제면

  • 소재지:포항
  • 대표자명:하동대
  • 설립연도:1973년
  • 선정연도:2014년
상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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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뽑아내는 국수는 인기가 있었다.

친구를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고, 집안에 있기보다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남편은 옹기장사였다. 소가 끄는 수레에 옹기를 싣고 와서도 아내가 잠시 한눈을 판다 싶으면 벌써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 남편이었다. 그간 집에서 오매불망 기다려온 아내보다 술친구가 그리웠고 술집이 궁금했고 동네 사정이 궁금해 참지 못했다. 그러면 수레에 가득 실린 옹기를 내리는 일은 고스란히 젊은 아내의 몫이 되었다.
 

때는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었을 1970년 초, 우리나라에 쌀 대신 밀가루가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옹기점포 옆에 부부가 함께하는 국수 공장이 셋이나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저들처럼 국수 공장을 시작하면 어쩌면 남편을 곁에 붙들어 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아내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남은 옹기를 모두 처분하고 국수 뽑는 기계를 들여오면서 아내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기계라곤 했지만, 전기만 연결되어 있을 뿐 80% 사람의 힘이 들어가야 하는 기계였다. 또한 아내의 눈에는 인근 국수 공장에 장사가 잘되는 듯 보였기 때문에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이 때 아내의 나이 30세였다.
그러나 어찌 알았을까.
평생 국수와 함께할 삶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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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항이 바라보이는 시장 안 골목으로 들어서다.

이곳이 바로 이순화 여사(76세)가 1971년 30살에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온 ‘구룡포제일국수’다. 구룡포항이 바라보이는 시장 안 골목으로 들어섰다. 바다가 지척인 까닭에 싱싱한 해산물이 가판대를 점령하고 건어물 점포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사이 이 집의 내력이라도 말해주는 듯 작고 흰 타일 벽은 빛이 바랬고, 그 중간에 붓으로 쓴 ‘제일국수공장’이란 검은 글씨가 건물에 난 창문보다 작게 붙었다. 국수 공장 앞에는 푸성귀와 과일을 파는 난전이 점령했고, 하나둘씩 사람들이 들락거리며 국수를 사가는 모습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이 집과 함께 늙어가는 작은 옛날 기계는 젊은 남자와 나이 든 할머니의 부지런한 손길을 받으며 몇 번의 둥근 롤러를 거치면서 끊임없이 국수를 뽑아내고 있었다. 대나무 가는 줄에 매달린 국수 면발은 어린 학생인 듯 몇 줄씩 걷어 바닷바람이 불고 태양이 비추는 밖으로 가져가 널어놓는다. 잠시 숙인 허리를 펴는 할머니의 굽은 뒷모습을 보는 순간 마치 옛날 어머니 뒷모습을 보듯 반가웠다. 그간에 잊고 살았던 어머니의 향기와 숨결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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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으로 생산되는 국수와 비교도 되지 않는 어머니의 손 맛

여사가 만들어 내는 국수는 착 감기는 면발이 기가 막혔다. 대기업에서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 내는 국수는 삶으면 하얀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면서 삶은 물이 흰색으로 변하기 마련인데, 이곳에서 만든 국수를 삶은 물은 처음처럼 투명하다. 마치 한결같이 국수 하나만 만들며 살아온 주인장 삶처럼…….
 

지금은 이곳으로 여름철 휴가차 왔다가 많이들 사간다. 그리고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주문이 쇄도한다. 국수의 원료인 밀가루도 한 포에 5천원 더 비싼 유명 상표 것만 고집한다. 그래서 다른 곳보다 국수가 약간 비싸다고 한다. 인근 농협에서 쌀을 공급해주면서 쌀을 이용한 국수를 만들어 보라며 PB상품을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갈등 중이다. 게다가 대기업에서 요청이 들어와 포항에 유명한 오징어를 이용한 ‘오징어칼국수’가 개발 중에 있다. 또한 구룡포 수협과도 협의 중이라고 한다.
 

어머니로 시작한 전통의 국수와 젊은 아들의 아이디어와 발전을 위한 혁신이 합쳐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산딸기 축제기간에는 ‘산딸기국수’, 새우분말국수’, ‘다시마국수’를 만들어 팔기도 하면서 늘 새로운 아이템에 도전하고 있다. 구룡포에 가면 ‘모리국수’집이라고 시원한 콩나물과 해산물을 푸짐하게 넣은 유명한 식당이 있다. ‘모리’란, 모두 모여라는 경상도 사투리로 ‘모디’라고 했다가 ‘모리’로 바뀐 듯 보인다. 이 집에서 이곳 구룡포 국수를 사용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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