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견뎌온
경상북도의 뿌리 깊은 기업들을 소개합니다.

철공소

대한주물공업(주)

  • 소재지:안동
  • 대표자명:이진우
  • 설립연도:1953년
  • 선정연도:2013년
상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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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끝나고 피폐해진 나라 곳곳에 전쟁이 할퀴고 간 잔재, 버려진 고철이 많았다. 고철은 직접 재활용이 가능하다. 그래서 가난했던 살림에 인기가 많았다. 이것을 엿장수들이 돌아다니며 모아 주물공장에 팔았다. 혹은, 주물공장에서 직접 돌아다니며 고철을 사 모으기도 했다.

 

그렇게 주물공장에서 사들인 고철은 당시에 꼭 필요한 농기계나 수도 펌프 등으로 새롭게 만들어져 각 농가에 공급됐다. 당시 주물공장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나라를 재건하려 애쓰는 국민에게 삶의 원동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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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을 이어온 '대한주물공업(주)

이곳 안동에서 60년째 주물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이 있다. 1953년 3월, 동족상잔 비극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시기, 이종진(1978년 작고) 옹이 시작한 ‘대한주물’이다. 나라는 전쟁의 후유증을 앓고 있었으며, 민심 또한 흉흉했던 시기였다. 이때 ‘대한주물’은 전쟁이 토해 놓은 찌꺼기 고철을 사들여 아픔의 상처를 녹이듯 다양한 농기계와 파이프, 가마솥 등 전쟁과 상관없는 실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냈다.
 

1980년대가 되자 안동에만도 주물공장이 다섯 곳이나 생겼다. 그러나 규모에서나 품질에서 아무도 ‘대한주물’을 따라올 수는 없었다. 1979년 7월 공업진흥청 기술지도업체로 지정되었으며, 그해 12월에는 난방용 자연대류 방사형 방열기 KS 표시 인증을 받았다.
 

1980년 8월에는 중소기업 근대화 실천계획 업체로 승인을 받았으며, 1980년 12월에는 드디어 법인으로 전환하여 ‘대한주물공업(주)’으로 상호를 변경하게 된다. 이후에도 회사는 성장을 거듭한다. 1981년 1월에는 배수용 주철관KS 표시 인증을 받았으며, 1986년 3월에는 NO-HUB 주철관 KS 표시 인증을 받는 등 명실공히 대한민국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주물회사로 거듭났다.
 

1994년 5월부터 프렌치 타입 주철관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승승장구, 1994년 12월에는 ISO9001 인증을 받았으며, 2000년 12월부터는 에폭시 수지 주철관을 생산해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시장의 상황에 맞게 변화를 거듭하면서 다수의 특허를 획득하는가 하면, 강한 충격과 고압, 지진 등에 견딜 수 있는 배수용 주철관을 만들어 대한주택공사와 전국 건축 현장에 공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 각국으로 수출을 하게 되었고, 자체 기술개발팀을 발족시켜 수랭식 자동 원심주조기를 개발하게 된다. 그리고 허브·노허브·프렌치 타입·에폭시 직관 및 이형관, 섹스티아, 양변기, 호크마, 난방용 방열기 등 다양한 제품을 연간 21,000톤 생산할 수 있는 회사로 발전했다.
 

그 동안 나라에서 받은 표창도 셀 수 없이 많다. 튼실한 경영으로 1995년 중소기업 우수업체 우수상을 받았으며, 1997년에는 21세기 선도 세계 일류 중소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2001년 10월에는 노동부장관으로부터 신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선정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표창을 받았다. 그만큼 노력을 기울인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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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위주에서 소비자 위주로

물건을 만들어만 놓으면 팔리던 시대는 지났다. 소비자가 어떤 물건을 원하는지 철저한 시장조사와 분석이 필요했다. 정보화 시대인 현대에 맞추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영업도 수요에 맞추어 품종을 개발하고, 창출해 냈다. ‘대한주물공업(주)’ 이상철 전무는 말한다. “공급자 위주에서 소비자 위주로 발 빠르게 변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시장에 맞춰 대처하는 능력이 수요를 창출하는 원동력이다. 이제, 홈페이지 개발 등 IT 시대에 맞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얼굴에서 할아버지로부터 시작해서 아버지에 이어 형제가 회사를 이끌어가야 하는 사명감, 뚜렷한 기업 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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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주물공업(주) 이진우 대표

‘대한주물공업(주)’을 움직이는 이진우 대표는 늘 바쁘다. 잠시 틈도 없이 사업과 관련한 약속이 줄줄이 잡혀 있다. 안동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충북에도 별도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 일주일에 3일 정도만 안동에 있다. 가끔은 서울 사무실도 챙겨야 한다. 겨우 어렵게 사진만 담을 수 있었다. 반듯한 모습에서 가업에 대한 자존심과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얼굴에는 지난날 부친이 일구어온 회사를 이만큼 키워낸 추진력과 오랜 세월 온 힘을 기울여 가업을 이어온 노력의 흔적이 담겨 있었다.

오늘이 있기까지 끊임없이 회사가 도약을 거듭해온 것은 미래를 내다보고 다양하게 변화해온 통찰력과 추진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인사를 건네고 걸음을 옮기는 이진우 대표, 그 뒷모습에는 칠순이 넘은 나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열정이 넘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