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견뎌온
경상북도의 뿌리 깊은 기업들을 소개합니다.

철공소

주식회사 영동농기계

  • 소재지:안동
  • 대표자명:김이한
  • 설립연도:1962년
  • 선정연도:2013년
상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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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공장을 찾아오다

‘영동농기계’는 정부의 ‘새마을 운동’과 ‘잘살아보세’라는 구호아래 자급자족의 꿈을 위한 정부 정책에 발맞춰 1962년에 김권현이란 사람이 처음 창업한 회사였다. 그리고 조금씩 사세를 확장해가고 있던 중이었다. 마당으로 들어선 젊은이는 군대를 제대하고 서울에서 얼마간 시간을 보내다가 고향인 안동에서 뿌리를 내리고 뼈를 묻어야겠다는 결심을 세우고 안동으로 내려온 스물다섯 살, 혈기 넘치는 젊은이의 이름은 김이한이었다. 그는 한동안 자신이 일할 수 있는 적당한 곳을 찾던 중이었다. 그리고 우연히 영동농기계를 알게 되어 무작정 회사를 찾아왔다. 남다른 인연과 인생의 기회는 자신의 용기가 가져다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이한은 이렇게 권대표의 눈에 들어 영동농기계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의 말대로 공장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뒤, 그의 부지런함을 지켜보던 권 대표는 그에게 사무실 출고와 입고, 그리고 자재 관리까지 맡겼다. 김이한은 부지런했으며, 자신이 말한 대로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일했다. 공장에 인력이 모자라면 최선을 다해 도왔고, 며칠씩 먼 곳으로 가는 출장도 마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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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만 보고 달려온 시절
 

영업사원이 된 김이한은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대리점을 넓혀 갔으며, 농민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기계의 장·단점과 농민의 불만이 무엇인지 조목조목 기록하여 농기계 제작에 적용했다. 승용차가 귀했던 시절, 버스를 갈아타면서 하루 다섯 군데 시·군을 다니다보면 굶는 것은 다반사였고, 밤 10시를 넘겨서야 숙소로 찾아드는 것은 늘 있는 일이었다. 여관에서 손수 와이셔츠나 양말을 세탁해 갈아입어야 했다. 하루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전국에 영업망이 생겨났다. 김이한은 어느 순간, 전국에서 농기계 판매 영업의 최고수가 되어있었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결과였다.
 

회사는 나날이 발전을 거듭해갔다. 1989년에는 유망 중소기업에 선정되었고 이후, 농산물 건조기와 농산물 세척기뿐 아니라 마늘파종기 등 수많은 농기계를 개발했다. 2000년대에는 전자동 컴퓨터 식 건조기를 개발해 농가 보급에 앞장섰다. 발명특허도 여러 개를 획득했다. 계장, 과장, 차장 등 차곡차곡 직급이 오른 김이한은 경영 전반을 맡아보는 전무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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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없이 회사를 물려받다

그런데 2009년, 불쑥 찾아와 일을 하겠다고 용기를 냈던 그날로부터 30년이 넘은 시점에 김이한은 영동농기계 최대주주였던 김장호(75세) 옹과 권삼석 대표로부터 충격적인 제안을 받게 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곳 영동농기계 대표를 맡아서 책임지고 꾸려보라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본인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50년을 정성껏 키워왔던 사업체를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이 데리고 있던 직원에게 넘겨준다는 것은 예삿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예를 다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끈질긴 부탁과 거듭된 사양에 해를 넘겼다. 경제 논리가 모든 곳을 지배하는 현실에서, 다른 사람에게 회사를 팔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한 방울 피도 섞이지 않는 자신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회사를 넘겨주겠다니 그것은 분명 매력적인 유혹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잘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설득은 집요했다. 직원들 덕분에 부와 명예를 누렸으니 이제는 손놓고 물러날 때가 되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진정으로 회사를 위하는 마음에서 젊은 사람이 맡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분명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독려 또한 아끼지 않았다. 1년 동안 밀고 당기기가 계속 되었다. 그리고 결국 김이한은 회사를 물려받게 된다.
 

물론 김이한 대표는 남아 있는 직원까지 모두 안았다. 그래서 영동농기계는 정년퇴직이 없다. 체력이 허락하는 한, 자신이 하고자 하는 한은 얼마든지 있어도 좋다. 직원의 평균 연령이 55세로 다소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장 어린 직원의 나이가 38세다. 그러나 고용주와 노동자의 관계가 아니다. 사장이라고 티를 내지도 않는다. 모든 경영 방침을 투명하게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리고 22명의 전 직원 중 대부분이 25년 이상의 근무 경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품질에 하자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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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을 농민과 함께해온 영동농기계

물건을 생산하고 판매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판매한 농기계도 꾸준하게 손을 보아준다. A/S가 신뢰도를 좌우한다는 생각으로 각 시군별 대리점을 통해 농민들이 불편함이 없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업계에서 ‘(주)영동농기계’를 알아주는 비결이며, 최고 기업이 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