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견뎌온
경상북도의 뿌리 깊은 기업들을 소개합니다.

양조장

은척양조장

  • 소재지:상주
  • 대표자명:임주원
  • 설립연도:1963년
  • 선정연도:2015년
상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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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척 양조장

‘은자골 탁배기’는 대구와 경북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았음직한 이름이다. 그것도 매스컴이나 광고를 통해서가 아니라, 어느 날부터 사람들 뇌리에 은연중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 역시 익히 들어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언젠가 한번은 우연한 기회에 맛을 보기도 했다. 실제로 ‘은자골 탁배기’는 동기회나 야유회 등 친목 모임이 있을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술이다. 상주 인근에 살던 사람이 ‘이렇게 맛있는 막걸리도 있다’며 자랑삼아 가져왔거나, 그 맛을 기억해두었던 사람이 스스로 챙겨왔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어떤 결과에는 응당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막걸리는 마시고 나면 머리가 아픈 것이 뒤끝이 좋지 않았다던가, 시큼털털한 맛이 강해 거부감이 들었다던가, 그도 아니면 배만 부르고 취기가 너무 오래가 힘이 들었다던가 하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 까닭에 일부 마니아들이 아니면, 시골의 노인들이 논밭에서 일하다가 허기를 면하기 위해 마시는, 즉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나 즐기는 싸구려 술이라는 인식이 깊게 박혀있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힐링 열풍이 불면서 막걸리는 새롭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그간의 서러웠던 팔자도 바뀌게 되었다. 이때 대기업이 발 빠르게 가세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막걸리가 시장에 쏟아졌다. 하지만 눈은 속여도 혀는 속이지 못한다는 속담처럼 사람들의 정직한 입맛으로 인해 상주의 구석진 은척면 은척 양조장에서 만든 ‘은자골 탁배기’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동안 막걸리에 깊이 박혀있던 부정적인 이미지를 단숨에 뒤집은 시원하고도 깔끔한 맛 때문이었다. 그 매력적인 맛은 술은 입에도 대지 않던 사람들은 물론, 소주만 즐기던 이들의 입맛까지도 사로잡았다. 그렇다면 ‘은자골 탁배기’에는 과연 어떠한 사연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쉽지만은 않았던 30년을 되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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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자골 택배기가 태어나기 까지

1997년, 양조장 명의가 본인 앞으로 넘어오면서 막걸리 이름을 정겨운 ‘은자골 탁배기’로 바꾸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막걸리 만드는 일에 정성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다. 양조장은 허울뿐이었고 실상은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 있었던 것이다. 보금자리라 여겼던 살림집에 빨간 압류 딱지가 붙었다. 그나마 양조장만큼은 국가면허라는 특수성 덕분에 온전할 수 있었다.

그녀는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거기서 좌절하거나 나약해진다면 아이들은 물론 본인이 꿈꾸던 희망과 이상도 멈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친정어머니에게 손을 벌렸다. 못난 딸이라는 자책에 괴로웠지만 친정어머니는 다행히 딸의 부탁을 물리치지 않고 흔쾌히 종자돈을 마련해주었다. 그렇게 어머니와 가까운 벗의 도움으로 간신히 숨통이 트였고, 함께 힘들어하던 남편에게 중장비까지 장만해줄 수 있었다. 그렇게 양조장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막걸리 만드는 일에 다시금 매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판로보다는 맛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맛만 좋다면 얼마든지 판로를 개척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여 그녀는 모두가 인정하는 맛있는 막걸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들어갔다. 사람 저마다의 성격이 다르듯 술에도 다양성이 존재한다고 믿고, 이곳의 물맛과 습도와 온도, 효모의 생성과정과 누룩의 중요성, 숙성과정 등 술의 성질을 모두 파악했다. 그리고 혁신을 위해 양조장에서 일하던 기존의 아주머니들을 모두 내보내는 결단을 내렸다. 지금까지 해온 작업에 변화를 준다는 것을 타성에 빠진 그들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의 빈자리는 더 젊고 진취적이며 뜻이 통하는 사람들로 하나둘씩 채워졌다.

다음으로 일반적으로 6도 이상인 막걸리 도수를 5도로 낮추는 작업을 시작했다. 사실 막걸리 알코올 도수라는 것은 올리기는 쉬워도 낮추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 영역이다. 그러다보니 처음부터 쉬이 성공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맛에 대한 희망은 요원하기만 했다. 얼마나 많은 술을 쏟아 버렸는지 헤아릴 수 없었다. 나아가 시원하면서도 감칠맛을 내기 위해 그 어떤 것에도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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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상주햅쌀

상주는 예부터 누에, 곶감, 쌀을 포함해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일컬어졌다. 그녀는 그것에 착안하여 비록 생산원가는 많이 들더라도 드넓은 상주평야에서 생산되는 쌀로 막걸리를 빚어야겠다고 결단을 내렸다. 밥은 수입쌀로 해먹지 않으면서 똑같이 입으로 들어가는 막걸리는 수입쌀, 그것도 막걸리 전문재료인 팽화미를 사용해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원료에서부터 앞서나갔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면 ‘은자골 탁배기’의 원료 변천 과정을 보자. 처음 시아버지 시절에는 막걸리 전용으로 판매되는 수입 밀가루만 100% 사용해 막걸리를 빚었다. 그러던 것을 그녀가 꾸려가면서 1등급 밀가루로 바꾸었고, 더 나아가 쌀 30%, 밀가루 70% 혼합으로 한번 더 업그레이드 시켰다. 그리고 이제는 쌀 50%, 밀가루 40%, 전분 10%를 사용해 빚고 있다. 물론 쌀은 그 해 상주에서 생산된 당해년도 쌀을 사용하며, 밀가루도 여전히 1등급만 고집한다. 사실 양조장을 경영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쌀막걸리는 팽화미, 즉 쌀을 가열하여 전분을 알파화시킨 상태로 가공한, 한마디로 뻥튀기를 만들어 놓은 것을 사용하는 곳이 많다. 그만큼 저렴하기도 하고 만들기에 편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한 유혹을 물리치고 여전히 상주농협을 통해 상주 삼백쌀(당해년도 쌀)을 구매해 막걸리를 빚어오고 있다. 단언컨대 정성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험난한 과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선 곡물 저마다의 성격이 다른 데서 오는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만드는 과정 역시 고두밥을 쪄서 누룩을 이용해 만드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다 보니 더욱 그랬다. 그러나 발효와 숙성 등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는 동안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어느 특정인이 아니라 평범한 대중의 입맛을 겨냥하고자 노력했다. 하여 여타의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막걸리를 구해와 맛을 비교하는 등 장단점을 찾았고, 여러 사람에게 맛을 보여 솔직한 평가를 부탁함으로써 대중이 원하는 술맛을 찾아갔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맛에 변화가 일어나자 사람들에 의해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양조장은 활기를 띠었고, 직원들이 하나둘씩 불어남과 동시에 생산되는 막걸리의 양도 늘어났다.

그러던 2,000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던가, 막걸리 ‘공급구역제한제도’가 풀렸다. 바야흐로 막걸리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위기랄 수 있었지만, 도전하는 이들에겐 기회일 수도 있었다. 그녀도 기회로 삼았다. 운전대를 잡은 아들과 더불어 가까운 상주 시내를 넘어 대구, 김천, 구미 등지를 다니며 판로를 넓혀갔다. 처음엔 수월하지 않아서 하루 십여 곳을 다녀 단 한 곳만이라도 성공하면 만족했을 정도였다. 어떤 날에는 사나운 개에게 물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닦달하는 동안 판로도 조금씩 넓어졌고, 맛에 반한 소비자들도 다시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은자골 탁배기’는 상주의 명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 좌절하지 않도록 도와준 종교의 힘, 몸에 밴 친화력, 결코 저버린 적 없는 소비자와의 신뢰 등이 합쳐진 결과였다. 그렇다고 해서 대량생산에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다. 지금의 생산시스템이 가능한 만큼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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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향토뿌리기업 상주곡자 기술 인수

1966년 10월 1일 문을 연 이후 전통방식만을 고집했던 '상주곡자'(오종석 사 장)에서 생산된 누룩을 이용해 막걸리를 빚었던 은척 양조장에 2013년 오종석 사장은 기술 및 기기 일체를 이전해 주었다. 평소 누룩을 직접 만들고 싶어했던 임 대표의 꿈이 실현되었고 지금도 임대표는 시설과 기술을 전해준 오종석 사장에게 고마워하며, 자신이 이렇게 맛있는 막걸리를 생산할 수 있었던 공을 ‘상주곡자’ 의 오종석 사장에게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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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5% 은자골 택배기의 별난 맛

어느 지역이든 막걸리 맛에서 그 고장의 인심과 사람들의 품성을 알 수 있다. ‘은자골 탁배기’의 맛은 여타 막걸리와 달리 알코올 5%라서 그런지 다소 맑은 느 낌이지만 절대 가볍지 않다. 목 넘김이 산뜻하면서 첫맛이 깔끔하고 단맛과 청량감이 살짝살짝 맴돈다. 게다가 빛깔마저 산뜻하다. 그러니 논밭에서 일하는 도중에 마셔도 어울리고, 해가 떨어지고 하루의 피곤함을 몰아낼 때 마셔도 어울린다.

특히 상주는 삼백의 고장인 만큼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봄부터 가을까지 농번기 때는 막걸리 판매가 절정에 달했다.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이 독한 소주를 마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아무리 맛있는 맥주라도 시원하지 않으면 그 생명력을 잃는 수밖에 없다. 냉장고가 흔치 않던 시절, 맥주나 사이다는 마시고 돌아서면 금방 다시 갈증이 올라왔지만, 막걸리는 그렇지 않았다. 그 옛날 막걸리를 농주農酒라고 불렀듯 가히 농부의 술이었다. 마시면 갈증도 해소하고, 배도 부르고, 도수도 높지 않아 힘이 돋게끔 했으니 말이다.

이제 은자의 고장 은척면에서 생산되는 ‘은자골 탁배기’가 전국을 제패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물론 이곳의 물맛도 한몫을 하지만, 그것보다는 임주원 대표 특유의 정성과 친화력, 그리고 나눔을 실천하는 종교철학, 가족같은 직원들이 똘똘 뭉쳐 내일을 향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 때문이다.

‘은자골 탁배기’는 농사철이나 시골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은 1.2mL와 도심의 가게나 식당에서 많이 찾는 0.75mL 두 종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