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견뎌온
경상북도의 뿌리 깊은 기업들을 소개합니다.

연탄

동성연탄공장

  • 소재지:예천
  • 대표자명:장성일
  • 설립연도:1977년
  • 선정연도:2013년
상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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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연탄’, 이곳은 40여 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예천에 딱 하나 남은 연탄공장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조금 전 한천에서 보았던 물빛이 넓은 바닥에서 반짝인다. 검은 흙이 봄 햇살에 반사되면서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석탄이 오래 다져지면서 반짝반짝 빛을 낸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멀리 산처럼 쌓여 있는 분탄 위에 굴착기가 팔을 굽힌 채 건물 벽에 기대어 쉬고 있다. 창고 같은 건물 측면에는 ‘예천합동’이라 적힌 흰 페인트 글씨가 세월을 담담히 알려준다. 그 옆에는 한눈에 봐도 오래된 콘크리트 건물이 검은 얼룩으로 덮인 채 서 있고, 흡사 지옥문 같이 어둡고 네모난 공장 입구가 커다랗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그 속에서 쉼 없이 쏟아져 나오는 연탄들이 미리 대기 중인 트럭에 몸을 싣는다. 귀청을 울리는 기계음 속에서 바쁘게 연탄을 찍어내는 사람에게 간단한 묵례로 인사를 건네자 바쁘게 움직이는 중에서도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다. 그러면서 한 손으로 사무실 건물을 가리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연탄을 정리한다. 그 모습이 순박하다. 짧은 미소에서 지금까지 굳어있던 이곳에 대한 이미지가 단번에 날아간다.
 

이방인의 모습을 확인한 사무실에서 한 사람이 미닫이문을 열고 나오며 인사를 건넨다. 한눈에 보아도 현재 아버지 대를 이어 이곳을 꾸려가고 있는 장병호(55세) 대표다. 안내를 받아 사무실로 들어가자 바닥은 연탄 공장답게 검은색을 띠고 있다. 그 속에는 70년대에나 보았을 법한 회색 칠이 된 철제책상이 몇 개 놓여 있고, 작은 냉장고 앞으로 둥근 테이블이 있다. 음료수병을 앞에 놓고 앉았다. 또 한 사람, 이곳을 함께 꾸려가고 있는 장병호 대표의 동생 장성일씨다. 얼굴은 막 연탄공장에서 나온 것처럼 얼굴에는 검은 가루가 묻어 있다. 이곳이 어떤 곳인가를 잘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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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동성연탄이 있는 예천읍 무리실길이 공업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백전동에서 자리를 옮겨왔다.

세 명이 함께 운영하는 ‘예천 합동 연탄’이었다. 그러나 품질이 우수한 연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늘 변함이 없었다. 생활하는 집도 공장과 담장 하나 사이에 지어서 생활했다. 세월은 어김없이 흘렀다. 1980~1990년대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석탄에서 유류로 바뀌기 시작했다. 연탄은 점점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생산량이 줄어들고 전국에 300여 개 중소 연탄공장이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다. 함께 꾸려왔던 두 사람도 공장에서 손을 떼었다. 그러나 장주영 옹은 농촌마을이 유지되고 있는 한 연탄 소비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버텼다. 적게 만들고 욕심을 버리면서 공장을 이끌어 갔다. 직원도 줄어들었고, 수요도 옛날에 비해 1/5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7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자 이제 홀로 꾸려간다는 것이 힘겨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을 닫을 수는 없었다. 평생을 검은 흙과 함께해온 인생이었다. 늘 얼굴과 옷에는 검은 연탄 가루가 묻어 있었지만, 마음만큼은 깨끗했다고 자부했다.
 

1990년대 초,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던 맏아들에게 가업을 이어받을 것을 권유했다. 아버지 혼자 연탄공장을 꾸려간다는 것이 힘에 부치고 아버지가 평생을 일궈온 일을 누군가는 이어가야 한다는 사명감이 아들 마음을 움직이게했다.
 

맏아들은 물론 둘째 아들까지 합세를 했다. 아버지 뜻을 받들어 두 아들 역시 욕심부리지 않았다. 제품 품질에만 신경을 썼고, 판매까지 직접 하면서 유통망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았다. 연탄도 주문이 들어오면 만들었다. 당연히 재고가 생길 수 없었다. 공장을 운영하면서 그렇게 생산한 연탄을 산매가로 직접 판매하니 일석이조였다. 게다가 의외의 기회가 찾아왔다. 외환 위기가 오면서 유가가 폭등하자 연탄 경기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연탄 겸용 보일러가 인기를 끌면서 연탄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물론 과거 호황기 시절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그런대로 꾸려갈 힘이 생겼다. 더 줄지 않는다면 평생을 이어가다 아버지처럼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형제는 아버지가 일궈놓은 가업을 20년간 그렇게 꾸려왔다.
 

한편, 2013년 4월 현재 판매가 420원 연탄 한 장 생산하면 270원 정부 지원금이 나온다. 서민의 주 에너지인 까닭이 다. 그래서 전국에 연탄공장이 더 줄지 않고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안동, 영주, 상주, 의성, 봉화 등 경북 북부 지방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그러나 전국 46개 연탄공장 중에서 경상북도에만 열두 곳이나 난립해 있다. 서울에 두 곳, 강원도 아홉 곳에 비하면 많은 편이다. 그러자 과당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 있지만, 양심상 그럴 수 없는 일이었다. 여전히 우수한 품질로 경쟁을 벌인다. 늘 자신이 있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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