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견뎌온
경상북도의 뿌리 깊은 기업들을 소개합니다.

제조업

(주)고령기와

  • 소재지:고령
  • 대표자명:김병주
  • 설립연도:1953년
  • 선정연도:2013년
상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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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혼이 담긴 '고령기와'

일제강점기, 전통 한와의 맥이 거의 끊어졌다. 일본식 가마인 달마요가 들어오고, 일본식 양와가 널리 사용되자 우리 전통 한와의 맥은 중단되고 말았다. 광복이 되었지만 사정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전통 기와공장이 문을 닫고, 장인들이 손을 놓으며 사람들 기억에서 조금씩 잊혀 가고 있었다. 이때, 경상북도 고령에서 홀연히 전통한와를 살려보겠다며 나선 젊은이가 있었다.우리 전통 한와의 생산 방식과 그 맥이 끊어져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김영하(작고)옹, 현재 ‘고령기와’ 선대 회장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몸담았던 공직생활을 그만두고 1952년 ‘고령한와’를 세운다. 부를 쌓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천 년 을 이어온 우리의 전통이 사라짐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당시 엘리트 지식인이라 불리던 공무원이 와공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주위에서는 이상하게 바라보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일본식 기와에 밀려 쇠락하는 전통 한와에 대한 안타까움과, 사라져가는 전통 한와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고령 기와의 옛 명성을 되살리겠다는 집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부터 정부의 새마을 사업으로 시멘트 기와와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서면서 더욱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수요가 더욱 줄어들었다. 하지만 전국 전통 한와를 만드는 공장들이 사라져가는 가운데서도 전통기와 제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집념과 끈기로 자신의 일을 고집했다. 그렇게 오로지 한길을 걸어왔던 ‘고령한와’는 20년의 세월이 흐르자 결실을 맺는다. 1970년대부터 정부가 사라져가는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면서 문화재 복원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1971년 1월 문화재관리국은 마침내 ‘고령한와’를 전통기와제조업자 제1호에 등록하는 쾌거를 이룬다. 하루아침에 얻은 것이 아니다. 최고령 장인들과 이루어낸 인고의 시간이 만들어낸 노력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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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고령기와 김은동 회장

지금의 ‘고령기와’ 김은동(63세) 회장은 1972년에 기왓공장에 정식으로 입사한다. 김은동 회장은 주요문화재 복원 및 보수공사에 전통 한와를 제작 납품하면서 수많은 우리나라 주요 문화재 지붕을 책임져왔다. 그러나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복원과 재현을 위한 전통 기법의 발굴과 계승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옛날 기와 조각이 발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어디든 달려가곤 했다. 전통 한와의 문양과 색, 크기는 물론, 건축물의 세밀한 부분 하나까지 복원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전통 한와를 고유한 제작기 법으로 완벽히 제현하기 위해 전통 가마와 도구, 기법에 대한 사료를 연구하면서 잠시의 노력도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전통 가마를 복원하고 전통제와 도구를 수집하여 기반을 확보했다. 이렇게 해서 비로소 탄생한 것이 1978년 서울 정동 미국대사관저 지붕이다. 완전한 수제작 전통 방식으로 완성된 기와를 시공하게 된다.
 

1986년 사장으로 취임하며 ‘고령기와’로 사명을 바꾸면서 김은동 회장은 새로운 도약기를 맞는다. 국내 최초 한식토기와용 자동화 설비를 갖추었으며, 특허도 여러 개 출원했다. 2004년에는 유망중소기업에 지정되기도 했다. 2009년 에는 중요 문화유산의 보수·복원 사업과 전통기와의 보존과 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문화유산(보존, 관리부문)대통령상’을 수상하는 등 고령기와를 기와업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동안 기울인 노력에 대한 보답이랄까. 문화재와 사찰 등, 지금까지 납품한 것을 이곳에 모두 나열한다는 것은 지면상 어렵다. 몇몇만 추려보면 광화문을 비롯하여 경복궁 강녕정, 경회루, 교태전 등 경복궁 주요 전각의 기와를 무려 22년간 납품했다. 또한 종묘, 창덕궁, 덕수궁, 남한산성, 수원화성……, 금산사 미륵전, 불국사, 부석사 무량수전, 법주사 대웅전 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숨이 찰 정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요 문화재 기와는 거의가 이곳 고령기와에서 전통방식으로 만든 것이다. 천년을 이어갈 우리의 문화재기에, 소중한 만큼 정성도 특별났다. 하나하나 진정한 장인정신을 담았다. 특히, 경복궁사정전 등 몇몇은 김은동 회장이 손수 전통 방식으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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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꿈을 꾸다.
 

지금 ‘고령기와’는 김병주(38세) 대표가 이어받아 3대째 꾸려가고 있다. 김은동 회장은 영업일선에서 살짝 물러나 있다. 한양대 공대 세라믹학과를 졸업한 김 대표는 일찍부터 고령기와의 미래를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지금은 전통을 잇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전 세계를 상대로 기와를 제작하고 있다. 젊음의 특권이랄 수 있는 도전과 패기를 무기로 ‘전통 한와’에서 ‘세계 한국 기와’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2000년부터 어떤 나라, 어떤 형의 기와라도 모두 소화시킬 수 있는 종합 시스템을 갖추었다. 이제는 유럽과 일본에 서 가장 선호하는 색상과 디자인을 적용한 새로운 유형의 점토기와인 평판형 기와와 기존 지붕재인 S형 기와를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기와의 재료도 다양화하여 금속기와, 싱글시멘트 기와까지 생산해낸다. 전 종목을 아우르는 기와 수출의 전초기지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가격경쟁을 해왔지만 이제부터는 당당히 품질경쟁으로 맞설 각오다. 한 달 연료비만 해도 3억 5천만 원 드는 대규모 시설에서 새로운 기와를 생산하고 있으며, 100여 명의 직원들 모두 일치단결하여 새로운 꿈을 향해 발돋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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