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견뎌온
경상북도의 뿌리 깊은 기업들을 소개합니다.

양조장

풍양합동양조장

  • 소재지:예천
  • 대표자명:김현숙
  • 설립연도:1964년
  • 선정연도:2013년
상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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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풍양면 소재지 한 골목 귀퉁이에 오래된 양조장이 하나 있다.

이름 하여 ‘풍양탁주’다. 무려 3대가 대를 이어내려오고 있는 만큼 역사도 깊고 막걸리도 맛있다. 낡은 기둥에 ‘풍양탁주’라고 적힌 사각 간판이 달랑 붙어 술 빚는 집이란 것을 알린다. 입구에 들어서면 시큼하게 술 익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고 술꾼의 입에 침이 고이게 만든다. 그리고 얼굴에 난 주름이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듯 지극한 눈의 할아버지가 이방인을 반긴다. 그 뒤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 집의 내력을 말해주는 안채 건물이다. 아담한 마당을 앞에 두고 정면 5칸, 미송으로 된 문과 유리가 촘촘한 띠처럼 어울려 일제강점기에 지은 근대 건축물의 모습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술을 빚는 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정갈하다. 유리 너머에는 얇고 투명한 커튼이 은은하게 아름다움을 더하고, 한때 북적거렸을 사람들 모습을 상상하니 격세지감에 가슴은 촉촉하게 물든다. 다만 이 집과 역사를 함께했던 큰 술독들이 마당에 줄지어 서서 길손을 위로한다. 옛날에는 이 술독이 주류제조업 허가증이나 마찬가지였다. 술독 각각에 번호와 용량, 그리고 허가 연도가 적혀 있는데 1963년이란 흰 글씨가 선명하게 지난 세월의 묵은 맛을 전한다. 이 집은 스텐발효기를 사용하지 않고 아직도 이 옹기에 술을 익힌다. 옛것에 순응하며 옛날 방식 그대로 옹기를 사용하여 막걸리를 익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맛이 한결같다. 예부터 옹기는 숨을 쉰다고 알려져 왔다. 그래서 주식물의 저장고, 단술, 주류 발효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우리 한민족만이 가지는 독특한 용기이다. 그래서 더 정겹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보다 더 반가운 것은 양조장을 꾸려가고 있는 여사장님이다. 일반적으로 술도가를 운영한다고 하면 남자일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풍양탁주는 이러한 편견을 단숨에 뒤집어 버린다. 길손의 마음을 따스하게 만드는 것은 여인의 미소, 누추한 곳이라며 부끄럽게 고개를 숙이는 겸손한 모습. 바로 풍양탁주를 이끌어가고 있는 김현숙 씨다. 참으로 복성스럽게 푼더분한 모습이다. 고운 피부와 초롱한 눈매에 정이 뚝뚝 흐른다. 이 집이 처음 문을 연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 지금의 사장 김현숙 씨의 시조부였다. 일본은 주세법을 만들어 집에서 술 빚는 것을 금지시키고 일정 인구에 하나씩 양조장을 허가해 운영하게 했다. 풍양탁주도 그렇게 생겨났다. 그렇게 면면히 이어오다 시조부가 돌아가시자 시삼촌이 가업을 승계하여 꾸려왔고, 또다시 시숙이 이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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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을 맞이하고 한국전쟁이 끝나자 전 국민은 만성 식량부족에 시달렸다. 이때 또다시 쌀로 막걸리를 빚는 것을 금지했다.

미국으로부터 밀가루 원조가 이루어지고 전 국민은 수제비, 칼국수 등 분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그때 밀가루로 막걸리를 만들었다.
 

1970년대 막걸리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양조장은 호황을 이루었지만, 1980년대에 이르러 서민과 농민의 대표 술인 막걸리는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그 여파로 양조장을 꾸려가던 선대는 대구와 김천에서 새로운 사업을 열고 이곳 양조장은 잠시 문을 닫는 듯했다. 그런데 6개월 후 대구에 살던 막내며느리 김현숙 씨가 선뜻 자신이 꾸려가겠노라 나섰다. 기억과 갈망이 녹아 있는 고향의 삶이었지만 도회지의 삶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 세월 추억이 고스란히 묻혀 있는 이곳에 대한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준비도 되기 전에 책임을 자처했던 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 않았다. 물론 그랬다. 여자로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았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었다. 다만 옛날 방식 그대로를 고집하며 차분하게 양조장을 꾸려가며 근처에 막걸리 시장을 잠식했다. 경상도 특유의 끈끈한 정과 입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우직한 충심에 막걸리는 맛을 더했다. 또한 여성 특유의 꼼꼼함과 성실함이 더해져 지금까지 삼대를 이어오게 된 것이다. 한때 문을 닫을까 생각도 했지만 장사가 잘 될 때는 잘 하다가 조금 어렵다고 쉬이 문을 닫을 수는 없었다. 남의 이목도 있었고, 자신에 의해 대를 이어온 가업의 맥이 끊어진다는 것을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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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주 막걸리는 미생물인 유산균과 효모균이 살아 있는 술이다. 그래서 늘 유통기한이 문제였다.

때문에 법적 제한도 있었지만 서울의 큰 기업형 양조장에서 쉬이 침범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2001년 ‘공급구역제한제도’가 풀리자 살균 막걸리가 생산되고 제조기술과 냉장보관, 용기의 새로운 개발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생막걸리의 유통기한을 늘이는 방법도 생겨났다. 비로소 전국에 막걸리가 뒤섞여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일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서울과 부산의 막걸리가 저가로 공급되며 가격 경쟁에 어려움을 겪게되었다. 그러나 김현숙 사장은 흔들림이 없었다. 다만 맛과 질은 떨어뜨리지 않고 생산단가를 낮추는 방법을 개발했다.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비밀이라며 입을 다물고 생긋이 웃지만 미소 속에 그녀의 단호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또한 팔려나갈 만큼만 예상해서 막걸리를 만들어 재고 부담이 없게 한 것도 위기에 대응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살짝 부족한 양이 이곳 막걸리 입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갈증을 일으켜 자주 찾게했다. 그래서 조금씩 소비가 늘어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욕심을 비우고, 정성을 다하는 것 자체로서 만족을 느꼈고, 한결같은 맛을 내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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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의 맛은 맑은 물과 술을 빚는 사람의 정성과 발효의 기술이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술을 빚는 사람의 심성이 지배한다고 할 수 있다.

화나는 일이 있거나 짜증을 섞어 술을 빚으면 술 빛깔이 탁하고 맛이 텁텁하거나 쓰다.
 

마시는 사람도 마찬가지인데 슬픈 마음으로 마시면 슬픔이 배가 되고, 즐거운 마음으로 마시면 기쁨 또한 배가 된다. 하물며 술을 빚는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이곳 풍양생막걸리는 사장님의 심성을 닮아 맛이 깔끔하고 긴 여운을 남긴다.
 

삼대를 이어 가업을 계승하고 있는 김현숙 사장님께 감사와 큰 박수를 보낸다. 더불어 오래도록 맛있는 막걸리 맛을 볼 수 있게 오달지게 꾸려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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