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견뎌온
경상북도의 뿌리 깊은 기업들을 소개합니다.

식품

(주)거인식품

  • 소재지:고령
  • 대표자명:손민정
  • 설립연도:1986년
  • 선정연도:2016년
상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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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고령으로 이전

“거인식품”이 걸어왔던 남다른 사연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이름처럼 그녀는 진정 거인이었다. 그녀의 고향은 대구시 중구다. 부산에서 태어난 남편을 만나 결혼한 후 1983년 대구시 수성구 황금동에서 처음 가게를 열었다.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부위별로 나누어 각 정육점이나 대형식당에 유통하는 일이었다. 월세로 시작할 만큼 궁색한 자본금으로 시작한 일이라 많은 한계에 부딪혔지만, 참 열심히 살아온 시간이었다. 부지런했고,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노력하는 자에게 희 망이 춤추는 법이다.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남편 특유의 성실함으로 신용이 올라가며 사람들과 일거리가 밀려들었다. 하필 이때, 영업장 건물주가 땅을 팔려 내놓았다. 사정이 먹히지도 않았다.
 

회사를 옮기기로 했다. 때마침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에 농공단지가 조성되고 있었다. 그동안 사업으로 인해 연결의 끈이 닿아 있던 고령축산조합장의 권유로 쌍림공단으로 터전을 옮길 수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쉽지 않았다. 논공단지라 지원을 기대했지만, 섬유가 주된 사업체였던 이곳에 축산가공 업체에 혜택은 돌아오지 않았다. 짧은 자본금은 건물을 새로이 올리고, 작업장 확장과 부대시설을 지으려면 적지 않은 자금이 필요했다. 개인 명의로 은행에 도움을 얻어 어렵사리 시작할 수 있었다. 남편이 그간 쌓아온 신용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직원 중 일부만 이들을 따라 삶의 터전을 옮겼고, 일부는 회사를 떠났다. 고령 산업단지는 시골이라 인력이 늘 부족했다. 농사가 주를 이룬 시골인 까닭에 구인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 아내가 직접 일을 해야 했다. 새벽에 일어나 밤 11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에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헤쳐 나갈 방법은 있었다. 지금까지 거래했던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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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미래를 향해 - “거인식품”의 꿈

돈이 목표가 아니다. 돈을 쫓다 보면 가슴이 피폐해진다고 한다. 어쩌면 이들에겐 당연한 생활철학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들에게 영업이란 없다. 아무리 사람 간의 관계를 이해타산을 따져 마음을 얻는다곤 할지라도, 힘으로 굴복시키면 복종은 할지언정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진정한 마음이 곧 영업의 진리라는 생각을 잊은 적이 없다. 이곳에서 일을 배워서 독립한 인사가 영업력을 발휘해 거래처를 빼앗아도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진솔한 마음을 전하는 영업방식 덕이다.
 

직원들과 화합을 위해 함께 하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 간단히 식사를 하고 색다른 시간을 보낸다. 진탕 먹고 마시는 왁자그르르한 직원들 회식은 가급적 지양한다. 공연이나 문화행사 관람으로 대신한다. 참 부러운 회사다. 이렇게 되기까지 쉽지만은 않았다. 거친 직업, 즉 칼을 다루고, 늘 피를 보며 작업하는 직원들이라, 회식자리에서 술을 마셨다 하면 서로 다투는 경우가 허다했다. 병원과 경찰서에 오가고, 다음 날이면 회사를 떠나거나 아예 종적을 감춰버리는 경우도 있다. 단합을 위한 회식이 분열을 조장하는 시간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진화된 문화회식, 이름도 참 문화인답다.
 

무엇이 이들을 풍요로운 삶으로 흥이 돋게 했을까. 다시는 같은 아픔을 겪지 않아야 한다는 진중한 다짐으로, 어머니의 슬픔을 고스란히 행복과 아름다움으로 승화해야 한다는 의지로, 슬픔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삶의 진실로 한 발짝씩 나아간 결과다. 이들의 희망찬 미래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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