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견뎌온
경상북도의 뿌리 깊은 기업들을 소개합니다.

식품

대양제면

  • 소재지:성주
  • 대표자명:권호용
  • 설립연도:1958년
  • 선정연도:2013년
상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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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과 동시에 시작된 '소표국수'

해방되고 1948년 6월 4일 국수공장을 시작해 지금껏 정성스레 이어온 기업이 있다. 대구시 북구 침산동에서 방앗간 겸 국수공장을 시작한 이래 한 번도 문을 닫은 적이 없다. 바로 ‘소표국수’를 생산하는 성주 대양제면이다. 소의 발걸음처럼 묵묵히 앞길을 걸어왔고, 60년을 한결같이 가업을 이어온 기업이다.
 

지금의 권호용(69세) 대표 부친 권팔수(1962년 작고) 옹이 처음 문을 열었다. 권호용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국수와 함께해왔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팔을 걷어붙이고 형과 함께 일을 거들었다. 고생도 많았지만, 성실하며 근검 절약하는 정신이 몸에 뱄던 터라 1957년 대구시 수창동으로 국수공장은 확장 이전한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나지않아 권호용 대표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가정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만다. 큰 언덕이 없어지자 외로움을 견딜 수 없었다. 막막했지만, 다행히 서울에서 대학을 마친 형이 아버지를 이어 가업을 이어받았다. 권호용 대표는 2대 사장이 된 형(권호상) 밑에서 국수 일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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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대표이사에 오르다

1999년 8월 1일, 권호용 대표는 대양제면의 정식 대표이사직을 맡게 되었다. 평생 국수와 인생을 함께하라는 하늘의 뜻이었다. 그러나 공장을 운영하는 일은 마음과 달리 뜻대로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직원들 봉급조차 제대로 줄 수 없었고, 세금이 밀리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처음 그랬던 것처럼 공장 2층에 살림집을 마련하고 직접 국수를 뽑고, 보일러를 고치고, 야간경비를 보는 등 1인 4역을 거뜬히 하면서 공장을 키워갔다.
 

2003년 1차 부도위기를 힘들게 연장했고, 2008년 세금 체납까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았다. 물론 종교의 힘도 한몫을 했다. 권 대표는 믿음이 자신을 일으켜 세울 원동력이라 믿었다. 조금씩 영업력을 키워가기 시작했고, 제품의 질에도 승부를 걸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조금의 운도 따라주었다. 우리나라에 국수가 새로운 음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칼국수, 물국수 뿐만이 아니었다. 국수에도 참살이 바람이 불어 다양한 국수가 소비자 입맛을 공략했으며, 소비자 또한 면을 이용한 다양한 국수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국수는 이제 어려운 시절에 먹던 음식이 아니라 특별한 입맛을 위한 고급 음식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권호용 대표 역시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어 아주 가느다란 세실면, 국수의 고급화를 주도하는 금실면, 메밀국수면, 콩국수면을 포함해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우동면까지 개발해 시장을 넓혔으며, 라면처럼 국수에 수프까지 함께 넣어 인기를 끌었다. 또한, 다양한 국수를 한 벌로 만들어 명절 선물이나 기업체 단체 선물 세트를 만들었다. 국수로 선물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였다. 반응은 예상대로 들어맞았고, 지금까지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어렵던 시절을 힘들게 극복하며 지금의 대양제면이 있기까지의 그 과정을 아들 권진석(41세) 씨는 옆에서 고스란히 목격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꿈을 담아 새로운 대양제면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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