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견뎌온
경상북도의 뿌리 깊은 기업들을 소개합니다.

식품

황남빵

  • 소재지:경주
  • 대표자명:최상은
  • 설립연도:1939년
  • 선정연도:2013년
상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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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고도 경주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관광지다.

그래서 경주에 가면 꼭 황남빵을 사서 먹어야만 경주 관광에 마침표를 찍는다고 한다. 손에 몇 봉 사들고 돌아와야 한단다. 갓 구워낸 빵을 입에 물면 지금까지 빵 맛에 대한 기억을 송두리째 부정하게 된다.

빵이라기보다 과자에 가깝고, 과자라기보다 빵에 가깝다. 한입 무는 순간, 차지면서도 바삭거리는 첫 식감이 입을 교란시킨다. 혀에 닿는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입에 달라붙지도 않으며 맛을 음미하게 한다. 그리고 꽉 찬 팥소가 탁 터지는 순간 입안에 퍼지는 맛은 팥고물이 달 것이라는 고정관념도 단번에 불식시켜 버린다. 단맛은 금방 물리게 하지만 황남빵은 그렇지 않다. 은근한 단맛에 자꾸만 손이 가게 만든다. 줄어드는 빵 개수에 안타까움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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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이름 붙여준 황남빵의 역사

‘황남빵’ 이것은 경주의 명물이다. 경주 시내 한복판, 신라 예술의 화려한 본거지 천마총과 불쑥 솟아오른 옛 왕릉들과 가까이하고 있는 곳이다. 70년을 넘게 빵 하나로만 지금까지 대를 내려오고 있다. 빵을 만드는 방식 또한 변함이 없다. 팥소를 만드는 방법은 역시 비밀이다. 직원 숫자도 비밀이고, 하루에 몇 개를 만드는지도 비밀이며, 일 년에 팥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역시 비밀이다. 비밀투성이다. 흰 옷을 입은 30여 명의 사람이 서서 빵을 만드는 모습은 어떤 단체가 치르는 신성한 의식처럼 보인다. 입을 가리는 마스크는 차라리 사람들의 일부처럼 보인다. 작은 빵 하나하나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믿음을 느낀다.
 

1939년, 한 줌 쌀조차 귀했던 시절이었다. 일본의 압제에 억눌려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웠던 시절, 가업의 창업자인 고故 최영화(1995년 작고) 옹은 주린 배를 불려주면서도 맛있는 것이 없을까 생각하던 끝에 조상 대대로 집에서 팥을 이용해 만들어 먹던 것을 독창적으로 개발했다. 스물한 살 젊은 나이에 기술을 익혀 우리나라 전통 떡고물이나 찹쌀떡 소로 쓰이던 단팥 소를 빵에 넣어 찌지 않고 굽는 방식을 개발해낸 것이다. 이름도 없이 시작한 황남빵은 황남동에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주인이 따로 이름을 만들지 않았다. 빵을 만들어 팔았고, 그 맛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인기를 누리게 되자 저절로 이름이 생겼다. 주인은 단지 빵만 만들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알아서 이름을 지어 불렀다. 정성을 다하자 사람들은 이곳의 빵을 찾기 시작했고, 정성이 우려낸 손맛에 사람들은 반했다. 그리고 지금의 황남빵이 있게 되었다. 결국 황남빵이란 이름은 정성과 사랑이 만들어낸 결과다.
 

황남빵은 처음부터 이곳에 있지 않았다. 1970년대 초, 매장 바로 옆에 있던 고대 왕릉이 발굴되었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릉원 ‘천마총’이다. 그 일대가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자리를 옮겨 옛 경주시청 근처 황오동에 새로운 터를 잡았다. 이후, 2대 가업의 계승자 최상은(64세) 대표가 본격적으로 꾸려가게 된다. 최상은 대표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잘나간다는 회사원이었다. 아버지의 부름을 외면할 수 없었던 최상은 대표는 고향으로 돌아와 빵을 만드는 기술을 전수받는다. 1979년부터 지금까지 30년 넘게 이어오고 있으며, 이제는 최상은 대표의 아들 최진환(36세) 씨가 3대째 가업 승계를 위해서 기술을 전수받고 있다. 빵을 만드는 기술만이 아니라 가업의 정신과 빵에 대한 자부심, 이곳의 경영 철학까지 전수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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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빵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품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황남빵은 지난 2002년 개인사업자로서는 최초로 철탑산업훈장을 수상한 바가 있다. 수제 전통 빵에 있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정확한 무게와 한결같은 맛을 내는 황남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 과정은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온 정성을 기울였던 창업주의 그 정신을 이어받은 후손과 직원들의 하나같은 정성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창업이래 지금까지 모든 생산 과정이 수작업이다. 엄청난 주문 수요에도 기계 대신 일일이 손으로 만든다. 이곳에 가면 빵을 만들어내는 전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 손놀림이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다. 이것은 가업을 일군 고故 최영화 옹의 유지를 전 직원들이 가슴 속 깊이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에 있어 물욕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순리의 묘를 실천하고 있다.

천년 고도 경주에는 수많은 문화재와 유적지가 신라인의 정기를 품고 내려오고 있다. 그와 더불어 황남빵은 지난 세월 동안 경주에서 태어나 경주에서 한몫을 하는 대표 식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대한민국 문화유산의 도시 경주에서 경상북도 ‘향토뿌리기업’인 ‘황남빵’이 존재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새로운 것이 늘 좋은 것은 아니다. 다만 단순계산법으로 꾸려가고 있다. 장점만 찾아서 고집스레 이어가는 것에 찬사를 보내게 되는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다. 황남빵이 100년, 200년을 더 이어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그랬듯 이웃과 더불어 산다는 철학과 맛을 위한 노력이 그 꿈을 실현해줄 것이 분명하다. 변하지 않는 정신과 그 맛이 갓 나온 빵처럼 따끈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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